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삼번의 난 (문단 편집) == 조선의 [[북벌론]]과의 관련 == 한편 당시 조선은 [[윤휴]]가 북벌론을 주장하던 시기와 맞물리는데, [[윤휴]]가 북벌을 주장한 까닭 중 하나가 "오랑캐들을 봐라. 지금 삼번이 저 난리를 친다. 우리도 협력해서 치욕을 씻자!" 이것이었다. 당시 조선왕조실록을 보면 조선도 삼번의 난을 이용해서 대만 동녕 왕국이나 삼번과 호응하자는 의견도 많았으나, 결국 흐지부지되었다. 사실 조선은 군사를 내고 싶어도 시도할 수가 없었는데, 당시 조선의 사정이 말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특히 조선은 왜란과 호란을 거치면서 인구가 격감했는데, 여기에 한반도 최악의 기근인 [[경신대기근]](1670-1671)[* 얼마나 최악이었냐면 '''조선 8도 전체가 흉년이었고''' 지배층까지 사망했을 정도의 대기근이었다.]까지 닥친 뒤라 군사를 낼 힘이 있으면 당장 백성부터 먹여 살려야 했다. 뿐만 아니라 당시 조선 사신들은 매년 북경을 다녀와서 청나라의 강대함을 조정에 보고하고 있었다. 조선은 청나라를 치기는 역량이 있기는 커녕 삼번의 난이 마무리된 이후에 조선에 다시 [[을병대기근]]이 닥치자, 오히려 식량을 원조해달라고 요청할 정도였고, 강희제는 5만석의 식량을 조선에 보냈다. 더구나 조선을 지배하는 성리학자들은 명나라의 유신들과 마찬가지로 배신자들인 삼번을 좋게 보았을리 없다. 특히 삼번의 우두머리였던 상가희와 경중명은 [[모문룡]]의 부하들로써 가도에 주둔할 때, 조선에 해적질을 하면서 큰 피해를 끼쳤고, 위에서 말했듯이 오삼계는 청군에게 산해관을 열어줘 만주족의 대륙지배를 도운 1등공신인데다가, 남명의 황제 주유랑을 직접 체포해 처형한 자였다. 아무리 복수에 눈이 멀었어도 원리주의적이 성리학자들이 지배층인 조선이 이런 배신자들과 호응할 것 같지는 않다. 그리고 장강이남은 반만주족 감정이 극심한데다가, 원래부터 번왕들이 정복한지역이기 때문에 주민들의 지지가 있어서 오삼계군이 쉽게 공략할 수 있었지만, 달리 조선이 국경을 맞댄 만주는 만주족의 본거지고, 화북지역은 청조에 대한 지지세가 확고했기 때문에 조선이 쳐들어가도 별 재미를 보지 못했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군사를 냈다가 청나라측의 역공을 당하게 되면, [[병자호란]] 때 겪은 삼전도의 치욕 저리가라 할 만큼 무자비한 보복을 받고 조선이 멸망했을 가능성이 적지 않다. 삼번의 난 70년후 [[준가르]]부가 청나라에 반란을 일으켰다가[* 준가르부와 그 전신 오이라트는 명나라시절부터 계속 중국 서북쪽을 약탈했다. 청조 성립후에도 여러번 청나라의 신경을 긁어서 청나라는 3번이나 원정했고, 그때마다 패한 준가르부는 일단 청나라에 충성을 서약했으나, 계속 배신했고, 결과적으로 제4차 원정에 나선 건륭제는 준가르부 전원을 학살해서 씨를 말려버렸다. 그 빈 공백지에 위구르족과 한족을 데려와 현재의 [[신장 위구르 자치구]]가 성립된 것이다.] 아예 민족이 말살당한 것이 좋은 예이다. 소수 만주족으로 다수인 한족 등을 지배해야하는 청나라는 그 특성상 이런 반란이나 군신관계 파기에 굉장히 잔혹한 모습을 보이기 때문이다. 삼번의 난만 보더라도 진압때 학살당한 백성들의 수가 잘 기록되지 않았지만, 1억으로 추정하기도 한다. [[http://www.qulishi.com/news/201603/90322.html|#]] 숙종 시기 삼번의 난이 마무리 된 직후 (1683년) 청나라에 사신으로 다녀온 우의정 김석주는 숙종 임금에게 보고하기를 삼번의 반란군은 모두 타도되었고, 반란의 수괴들은 모두 북경에 끌려와 참형을 당했으며, 명나라 유신들의 자손들이 지금 모두 청나라에서 벼슬하고 있고, (일본측에서 전해온 바에 의하면) [[정성공]] 세력도 이미 타도되었으니 이미 대세는 청나라에 기술었고, 천하는 명나라를 잊은지 오래되었다고 보고했다. [[https://sillok.history.go.kr/id/ksa_10904029_001|#]] 이것으로 효종 즉위 이후인 1650부터 시작해서 숙종대인 1670년대까지 계속 이어져 오던 조선조정 차원의 [[북벌론]]은 자취를 감추게 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